기후변화대응

자연의 권리

글로벌 이슈
2022.05.20

들어보셨나요? 자연의 권리!

You think you own whatever land you land on
당신은 발 딛는 곳 어디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네요

The earth is just a dead thing you can claim
대지는 그저 소유할 수 있는 죽은 것이라고

But I know every rock and tree and creature
하지만 난 알아요, 모든 돌과 나무와 생명체에겐

Has a life, has a spirit, has a name
생명이 있고, 영혼이 있고, 이름이 있다는 것을

Colors of the wind, 포카혼타스 OST(1995) – 디즈니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아래 현대사회의 덕목은 경제의 성장이었다. 교통 통신 수단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정복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의 생산과 소비는 유례없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 많은 소득을 위해 더 많은 물자를 생산하고 유통해 왔으며 이를 위해 자연을 착취해왔다.

이 가운데 사람들은 인간이 다른 자연적 존재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인식했으며 자연은 인간의 욕구 충족과 생존 빛 복지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를 도구적 자연관이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자연의 거의 모든 것을 사유재산화하여 사고판다. 동물과 식물, 땅과 물, 심지어는 공기까지도 거래되고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이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를 알려왔음에도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숱한 경고를 등한시했다. 그리고 자연의 한계가 인간의 경제활동에 재앙으로 닥치기 시작하고 나서야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보게 되었다.

환경에 대한 통계자료를 찾아보면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혹은 자연이 주는 경제적 이익에 대해 화폐가치로 환산한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연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지만, 이 역시 자연을 인간의 기준으로 계산하고 판단하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을 인간활동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여겨왔지만 이제는 자연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이다.

자연도 권리가 있다

어디선가 인간을 사고 판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아마 끔찍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여기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꽤나 가까운 과거까지 사람들은 인간을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거래해왔다. 그리고 인간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된다는 관념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역사이다. 인권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지금은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법제화되어 인권을 침해할 경우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인간만이 이성과 감성을 가진 존재이며 자연은 이성과 감정이 없이 그저 인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겼으나 동식물과 생태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도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교감하며 생존에 필요한 지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인간이 자연의 우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를 보장하는 제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 즉 생태계나 종(種)이 가진 고유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 수단으로서, 생태계와 종(種)이 존재, 번영, 재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사람이나 기업과 동일하게 보장한다.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의 권리에 대한 근거는 두 가지로 뒷받침되는데, 첫째는 인권이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부여받는 권리(자연권, natural rights) 라면 자연 역시 그 고유의 권리가 자연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연과 생태계의 번영은 결국 인류의 생존과 복지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국가들

1948년, UN은 양도할 수 없는 광범위한 범위의 인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문화, 종교, 법규,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 획기적인 문서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자연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언급하며 자연에게도 법적인 권리를 부여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주장은 힘을 얻어 2010년 4월, 세계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관한 세계인 회의(The World People’s Conference on Climate Change and the Rights of Mother Earth)에서 세계 대지의 권리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other Earth, UDRME)을 채택했다. 또한 같은 해 국제 자연의 권리 연맹(Global Alliance for the Rights of Nature, GARN)이 창설되었다. 이들은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재판소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UN은 2009년 UN 총회에서 ‘국제 어머니 지구의 날(International Mother Earth Day)’를 선포하고 자연과의 조화에 관한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30개국이 자연의 권리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국가 헌법에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국가가 되었다. 2011년에는 에콰도르에서 최초의 자연의 권리 소송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법원은 헌법에 따라 빌카밤바 강의 존재와 유지할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정부의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중단되었다.

2010년에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는 셰일가스의 시추와 프랙킹(fracking)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고자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조례가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피츠버그시는 미국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도시가 되었다. 2016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200개 이상의 부족 국가들이 회색 곰의 권리를 인정하는 그리즐리 조약에 서명했다.

2012년 뉴질랜드 정부는 황가누이 강 유역 및 지역 마오리족과 황가누이 강의 법적 인격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2013년 자연의 권리를 위한 유럽 시민 주도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이때 시민들이 자연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정부에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자연의 권리를 국내법에 편입시키기 위해 수많은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2022년 4월 5일 유럽에서 가장 큰 염수호인 마르 메노르와 그 분지(스페인 무르시아) 전체를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하는 ‘이니시아티바 인플레스타티바(ILP)’가 하원 의회에서 압도적으로 표결에 부쳐졌다. 이는 유럽 최초로 권리주체가 되는 생태계가 되었다.

2018년 12월, 치페와(chippewa, 미네소타 지역에 사는 북미의 최대의 원주민) 부족국가의 일원인 화이트 어스 밴드 부족은 아나시나베 민족(캐나다와 미국의 오대호 일대에 존재하는 토착민의 집단)의 전통 주식인 마누민, 즉 야생 쌀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마누민의 권리” 법을 채택했다. 마누민, 즉 야생 쌀은 치페와가 양도한 모든 영토 내에서 존재, 번성, 재생, 진화에 대한 고유권과 더불어 복원, 복구, 보존에 대한 고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특정 식물 종의 법적 권리를 확보하는 첫 번째 법이다.

2020년 9월 17일 목요일, 칠레 법원은 세계 2위의 금 생산 업체인 캐나다의 그룹 배릭 골드(Barick Gold)에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에 위치한 거대한 노천 광산인 파스쿠아 라마(Pascua Lama)의 건설공사를 포기하라고 명령했다. 안토파가스타(칠레 북부)의 환경 법원은 이 회사가 환경기준을 반복적으로 위반한 사실을 밝혀내면서 정부 환경청의 2018년 결정을 지지했다. 배릭 골드는 70억 칠레 페소(780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 외에도 우간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인도,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가 법을 개편하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며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연의 법적 권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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