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술은 더 이상 인권과 ‘별개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최전선’입니다.
— 폴커 튀르크(Volker Türk) 유엔 인권최고대표[1]

지난 9월, 폴커 튀르크(Volker Türk)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인권 침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디지털 공간의 문제가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UN이 공식적으로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는 국제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디지털 네트워크 안에서 보낸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우리의 일상을 더 풍요롭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익명성에 기댄 폭력,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 데이터 독점과 같은 문제는 전통적인 인권 개념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위협이다.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누리는 편리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대가가 숨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위험’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유엔의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디지털 인권 침해 사례
첫째, 데이터 주권의 상실이다.
2023년 Meta(페이스북)는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무단 전송한 사실이 적발되어 한화로 약 1조 7천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2]
또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은 심리테스트 앱을 통해 수집된 수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 정보가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캠페인에 활용된 중대한 사례다. 이는 거대 기업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수익 모델로 전락시켰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3]

둘째, 디지털 격차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다.
전 세계 인구 중 57%만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는 전 세계 40%에 달하며, 이는 인프라 문제가 아닌 디지털 문해력과 접근성의 부족 문제다. 저소득 국가의 여성은 남성보다 인터넷 사용률이 19% 낮아 약 3억 1천만 명의 여성이 기회로부터 배제되는 등 성별 격차도 심각하다.[4][5]

셋째, 기술 오용에 의한 감시와 폭력의 일상화다.
디지털 감시는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2019년 프랑스에서는 안면 인식 기술(FRT)만으로 용의자가 기소되어 18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고[6]
러시아에서는 시위 참여 활동가가 FRT로 식별되어 체포되는 등 기술 전체주의의 위험성이 확인되었다.[7]
이와 더불어 사이버불링은 온라인의 익명성과 집단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피해자의 생명권을 위협한다.

GDC와 3대 핵심 가치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지난 유엔 미래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글로벌 디지털 협약(Global Digital Compact, GDC)’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프라인에서 보호되는 모든 권리는 온라인에서도 동일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UN의 결의안처럼, GDC는 기술 발전 속도에 뒤처져 있던 인권의 가치를 디지털 시대에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GDC는 구체적으로 어떤 원칙을 제시하고 있을까? 협약은 다음의 세 가지 핵심 가치를 통해 디지털 인권의 기준점을 세운다.

1. 연결: 단순한 접속을 넘어선 기회의 평등
2030년까지 모든 인류의 보편적 인터넷 연결을 목표로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원격 수업에 접속하지 못해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던 저소득층 학생들의 사례처럼, ‘연결’은 곧 생존이자 기본권의 문제다. GDC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와 병원 등 필수 시설의 연결을 우선순위로 둔다.
2. 존중: 기술의 중립성에 대한 환상 타파
온라인 공간에서도 인권이 기술 개발과 배포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AI 채용 프로그램이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여 특정 성별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알고리즘 편향성 문제는 기술이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GDC는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 단계부터 인권적 요소를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3. 보호: 디지털 위협으로부터의 안전망 구축
특히 취약계층을 온라인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딥페이크 성착취물이나, 병원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랜섬웨어 공격 등은 디지털 위협이 물리적·정신적 피해로 직결됨을 증명한다. GDC는 이러한 디지털 범죄와 무차별적인 감시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안전장치 마련을 강조한다.
GDC의 골든타임
글로벌 디지털 협약(GDC)은 단순한 합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협약이 채택된 직후인 지금을 디지털 거버넌스 안착의 성패를 가를 ‘골든타임’으로 인식하며,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디지털 인권 보호를 위한 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체계화되고 있다.

첫째, AI 거버넌스의 제도화이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등장한 것 처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국제 AI 과학 패널’이 출범할 예정이다. 이는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고 AI 기술이 인류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감시하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거버넌스 기구가 될 것이다.[9]
둘째, 보편적 연결을 위한 ‘기가 이니셔티브(Giga Initiative)’의 확대이다. 유엔은 2030년까지 전 세계 모든 학교를 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는 목표 아래, 교육 현장에서부터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미래 세대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10]
이러한 노력은 2027년 유엔 총회에서 진행될 종합 평가를 통해 그 실효성을 검증받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인권을 향한 여정이 궤도에 올랐으며, 국제적인 시스템과 감시 체계는 점차 견고해지고 있다. 제도는 준비되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주체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디지털 인권 속 대학생의 역할
GDC의 5대 목표 달성은 정부와 기업의 노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생태계를 구성하는 ‘사용자’의 행동 변화를 필요로 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대학생들은 수동적인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인 감시자이자 주체적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

먼저, 스스로 보안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개인정보 동의 내역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위치나 카메라 등 불필요한 앱 권한을 삭제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극적인 내용을 접했을 때 무작정 공유하기보다 출처를 교차 검증해야 한다. GDC가 강조하듯 허위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디지털 시민의 기본적인 윤리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신고와 개입을 할 수 있다. 사이버불링이나 혐오 표현을 목격했을 때 방관하지 않고 신고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타인의 권리가 침해받는 순간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과 디지털 생태계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기술은 인권의 최전선이다.
그리고 그 전선을 지키는 사람은 바로 스마트폰을 쥔 우리 자신이다. 이제 편리함을 넘어, 권리를 생각하고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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